▲ 제4회 의정부시 아이사랑 수필공모전 수상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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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북부탑뉴스] 핸드폰 벨이 울린다. “할머니 전화 왔어요.”

시키기도 전에 손녀가 뛰어가서 핸드폰을 가져다준다.

친정엄마다.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이안이 있냐? 이안이 바꿔라.” 하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전화하시면, 맏딸인 나에게, ‘지금 어디냐? 뭐하냐? 먹었냐? 건강이 최고다.’ 하셨는데 우리 집 가까이 살면서 거의 매일 함께 지내는 증손녀가 재롱을 피우고, 말을 배워 소통이 되면서 부터는 증손녀랑 먼저 통화하신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맏딸인 내가 조그만 녀석에게 내 순위를 빼앗긴 느낌도 없지 않다.

“이안아 전화 받아. 왕 할머니시다.”

“와, 왕 할머니다.”

90세 증조할머니와 네 살 손녀의 통화내용이다.

“여보세요. 김이안 이에요.”

“왕 할머니다. 왕 할머니 보고 싶지 않니? 왕 할머니는 이안이 많이 보고 싶은데.”

“네. 이안이도 왕 할머니 많이많이 이만큼 보고 싶어요.”(보이지도 않는데 팔을 크게 벌린다.)

“이안아, 앵두가 빨갛게 익었는데 앵두 따러 와야지.”

“네. 갈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왕 할머니 집에 가자고 조르더니 당장 가자고 운다.

“이안아, 오늘은 해님이 없어. 내일 해님이 뜨면 그때 가자. 할머니가 약속할게.”

손가락까지 걸어 약속하고 간신히 달래서 재웠다. 손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왕 할머니 집에 가자고 조른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밤새 왕 할머니 꿈이라도 꾼 듯 막무가내다.

“이안아 비가 오니 다음에 가자”

“안 돼요. 이안이랑 손가락 걸고 꼭꼭 약속했잖아요.” 나는 약속이라는 말에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택시를 타고 친정엄마 집으로 향했다.

친정집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식들, 손자, 손녀들 와서 먹으라고 텃밭과 집 주위에 감나무, 배나무, 포도나무, 대추나무, 자두나무를 많이 심어 놓으셨다. 과일이 익을 때마다 “과일 익었으니 애들 데리고 따먹으러 와라.” 하신다. 해마다 맨 처음 열리는 과수는 앵두나무다. 엄마는 텃밭에 딸기, 토마토, 오이, 가지, 고추등 여러 가지 심고, 어떤 때에는 벼와 보리도 애들 보여주기 위해 심어 놓으신다. 그리고 손잡고 데리고 다니시며, 이것은 고추, 이것은 감자, 이것은 고구마, 하시면서 설명해준다. 그럴 때 엄마는 농부 해설가 같다.

가끔 엄마는 장난삼아 증손녀를 손녀인 성희라 부르시며 놀리신다.

“성희야, 앵두 많이 땄니?”

“성희야, 앵두 많이 먹어라.”

그때마다 손녀는 “왕 할머니, 난 엄마가 아니고 이안이에요. 김이안.”

조그만 녀석이 말대꾸하는 모양이 귀여워 엄마도, 이모도, 동생들도 “성희야! 너 성희지?” “성희 맞지” 하면서 놀린다. “아니라고요. 김이안 이라고요 김이안.” 하며 뾰로통 한다. 증손녀를 손녀라고 부르는 것은 이유가 있다. 둘이 정말 똑같이 생겼다. 같은 나이 때 사진을 보면 구별하기가 힘들다. 어떤 사진은 나도 헷갈린다. 하도 똑같아서 나는 사진을 사위에게 가져다주며, “누군지 알겠어?” 하니 사위는, 배꼽을 잡고 웃는다. “장모님, 정말 똑같아요. 어떻게 이렇게 똑같죠?” 의아해한다. 어릴 적 딸을 아는 사람들도 이안이에게 “와! 엄마하고 똑같이 생겼네.” 한다.

나는 며칠 전 손녀에게 딸 유치원 앨범을 보여줬다. 손녀가 하는 말

“할머니 이안이가 왜 여기 있어?” 한다.

“이안이 엄마야.” 하니까 운다.

“할머니는 왜 이안이를 자꾸 엄마라고 해.” 따지듯 말한다. 아마 주위 사람들이 엄마 이름으로 부르며 놀려서 속이 상한 것 같다. 아들과 딸이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손녀는 또, “이안이랑 함께 있는 오빠는 누구야?”라며 묻는다.

“이안이 엄마랑 삼촌이 이안이 만할 때 찍은 사진이야.” 했더니 뾰로통해서 방으로 가서 문을 닫는다.

그리고는 “이안이 할머니하고 안 놀 거야. 왜 할머니는 이안이에게 자꾸 거짓말을 해.”하면서 이불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할머니, 여기 이안이 이불도 사진에 있잖아” 한다.

이안이 이불이란 내가 결혼 전 직접 손뜨개로 만든 혼수이불이다. 오래되어 버리려고 했는데 딸이 “엄마가 정성 들여 손수 뜬 거라 얼마나 소중한건데 그걸 버려요. 조금만 손질하면 쓸 수 있겠는데. 조금만 손질해서 주세요.”라고 하여 딸에게 손질해 주었더니, 손녀가 보고 “이것은 내 이불이야 이안이꺼 할 거야” 그런 이유로 사진 속에 같은 이불이 있는 것이다. 조그만 녀석이 어떻게 사진 속 이불이 같은 이불인 줄 아는지 신통하기만 하다.

손녀는 “할머니 이안이에게 거짓말했으니까, 앞으로 할머니에게 비타민 충전 안 해줄거야.”한다. 이안이는 나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폭 안겨서 뽀뽀를 해주며 “비타민 충전.”하며 이마, 머리, 뺨, 등, 다리에 뽀뽀해준다. 내가 시큰둥하면 “한 번 더! 한 번 더!”라면서 몇 번이고 비타민 충전을 외친다. “할머니, 이제 됐지?” 하고는 “이제는 이안이 차례야, 나도 비타민 충전해줘” 한다. 내가 “비타민 충전”하며 꼭 안아주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됐어. 그만해.” 한다.

어느 날 이안이와 함께 있을 때 아들과 화상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서령이가(아들의 딸) 아들보고“아빠”하면서 안겼다. 그랬더니 이안이가 “서령 언니가 왜 이안이 삼촌보고 아빠라고 해.”하면서 운다. 모든 것이 자기 위주다. 얼마 전까지 할머니 생일도, 아빠 생일도, 엄마 생일도 다 이안이 생일이라고 우긴다. “이안이 생일이야, 이안이 생일 축하합니다. 해줘” 한다.

또 한 번은 유치원 생일잔치가 있는 날이었다. 집에 와서 “엄마 선생님이 이안이 생일 안 해주고 친구 생일만 해 줬어.” 하면서 뾰로통하더니 서럽게 운다. 난 그 모습에 무척 당황했다. 그런데 딸은 꼭 안아주며 “이안이가 생일 못해 서운했구나, 엄마랑 할머니랑 이안이 생일 하자.”라며 함께 나가서 케이크를 사서 가지고 와 촛불을 켜고 “이안이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러 주었다.

요즈음 나는 딸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가끔 나는 딸에게 “내가 아이 키우는 전문가야, 자격증도 있어.”라고 큰소리쳤는데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손녀가 울면, 손녀에게 “울지 마, 뚝, 뚝, 자꾸 울면 울보 된다.”라고 야단치며 달랬다. 그리고 딸에게는 “애 힘들다. 울리지 마라.” 했는데 딸은 손녀의 마음을 읽어 주고, 다 들어 주고, 채워 주는 것 같다. 딸은 손녀가 울면 “이안아 울고 싶어? 그래 울고 싶으면 울어, 다 울고 오면 엄마가 안아줄게” 한다.

그러면 울다가 잠시 후에 손녀가 “엄마 다 울었어.” 하며 딸 품에 안긴다. 딸은 “이안아 왜 울었어?” “응 그랬구나,” “이안아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그것은 이안이가 잘 못 한 거야” “그것은 엄마가 잘못했네, 엄마가 미안해”하면서 꼭 안아준다.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어린아이인데,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내가 해보지 못한 최고로 다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어린아이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가 끈끈한 사랑과 이해로 전해진 것 같다.

요즈음은 손녀가 많이 자란 것 같다. 키만 큰 것이 아니라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것이 보인다. 아들과 딸을 키울 때보다 더 큰 기쁨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아들, 딸 낳아 키울 때는,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라는 시대였고, 먹고 살기도 힘든 시대였다.

먹고 살기 바빠서, 시부모 모시느라고, 제대로 안아주지도 사랑한다는 표현도 제대로 못 해줬다. 그때 생각하면 아들, 딸에게 많이 미안하다. 그래서 아들, 딸에게 못 해준 것, 손녀에게는 다 해주고 싶어 많이 안아주며 “이안이가 최고로 예뻐요.” “이안이가 최고로 잘한다.” 그리고 “이안아 사랑해”도 많이 해주고, 칭찬도 많이 해준다.

친구들은 “손녀 돌보기 힘들지 않니?” 물어온다. 힘든 건 사실이다. 친구들이 밥 먹자고 해도, 놀러 가자고 해도 딸 스케줄을 보고 약속을 잡는다. 그런 나를 친구들은 “손녀 돌보려고 항상 대기하고 있구나. 대기조야?” 핀잔을 하며 놀린다. 손녀가 왔다 가고 난 집안은 온통 엉망이다. 안방, 작은방, 거실, 침대 할 것 없이, 대청소를 해야 한다. ‘손녀를 돌보려면 항상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해’하던 다른 친구들 얘기가 실감 나는 요즈음이다. 가게가 보이면 어떤 때에는 조그만 손으로 나를 끌고 무조건 들어간다. 주머니에 돈이 없어 당황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딸이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다면 난 괜찮다. 그리고 손녀를 통해서 얻는 것이 더 많다. 요즈음처럼 코로나19로 마음 놓고 밖에 나갈 수 없었던 답답한 날들을, 나는 힘들지만 바쁘게 움직이며 손녀 재롱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껏 큰소리로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안이는 하루만 걸러서 만나도, 내가 보이는 곳에서부터 팔을 벌리고 뛰어온다. 나 역시 팔 벌려 뛰어가서 꼭 안아준다. 이안이는 “할머니 이안이가 할머니 많이 보고 싶었어, 하늘만큼 땅만큼” 하면서 있는 힘을 다해 팔을 벌린다. 나 역시 “할머니도 이안이 많이 보고 싶었어, 밤새 얼마나 컸는지 안아보자” 하며 꼭 안아준다.

이안이는 “할머니 비타민 충전 많이 해”하면서 몇 번이고 안긴다. 그리고는 팔을 쭉 뻗고 입술을 쑥 내밀면서 목에 매달려 빰에 뽀뽀를 해준다. 세상천지에 이보다 행복하고 기쁜 일이 있을까 싶다. 헤어질 때면 가다가 뒤돌아 와서 “잠깐만 할머니” 하며 목을 당겨 뽀뽀를 하고, 귀에 대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고는, “엄마하고는 비밀이야” 하면서 오고 가기를 몇 번씩 되풀이하곤 한다. 아들, 딸 키울 때 까맣게 잊었던 행복한 순간들이 손녀를 보며 떠 올라 더 많이 행복해진다.

‘오늘도 나는 손녀가 와서 어떤 말로, 어떤 재롱으로, 나를 웃게 해주고 행복을 줄까?’ 또 ‘나는 오늘 손녀에게 무얼 해주면 좋아할까?’ 생각해 본다. 손녀에게 바라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안아, 햇빛 많이 받아 자란 튼튼해진 나무처럼, 사랑 많이 받아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렴. 추운 겨울 눈보라 엄동설한에도, 세찬 비바람 속에 흔들려도 끄덕 않고 자라는 나무들처럼, 넘어져도 일어나 당당하게 김이안으로 살아라, 나무가 자라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뜨거운 여름 농부들과 나그네에게 시원한 그늘을 주는 푸른 나무처럼, 넉넉하게 편안하게 베풀고 나누며, 어디 가든지 존귀하고 존중받는 자가 되어라.’ 나의 웃음 바구니, 나의 행복 바구니, 나의 사랑, 나의 비타민 손녀 김이안, ‘사랑 많이 받고, 많이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어라’.

이안이는 가까이에 살아 날마다 보는데, 멀리 사는 데다 코로나로 자주 보지 못하는 사랑하는 친손녀 서령이 아영이도 많이 보고 싶다. 그리고 직접, 그리고 매일 사랑을 전해주진 못하지만 똑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전하고 싶다. 나의 비타민, 나의 활력소, 나의 손녀들 많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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