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의정부시 아이사랑 수필공모전 '우수상'
문지훈 - 우리아빠는 ‘고길동’
[경기북부탑뉴스] 이글은 육아로 인해 만성피로와 탈모에 시달리지만, 아기의 웃는 모습에 다시금 힘을 내 딸랑이를 흔들어주는 모든 아빠들의 마음을 달래 주고자 써내려 간 육아휴직 중인 포돌이 아빠의 수필입니다.
Episode 1. [만 남]
‘(웅성웅성) 산모께서는 이쪽으로 들어오시고, 보호자분은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
찌익~ 찌익~ 터벅터벅...' 간호사들의 일상적이고 차분한 목소리와, 예비 산모들의 불안한 마음을 대변하는 슬리퍼 끄는 발소리로 이른 아침 병원은 분주했다.
현재시간 am 7:50...‘분만실’로 들어가는 그녀의 표정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당당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지만, 후훗... 난 보고야 말았다.
학창시절 지각하여 담 넘다가 선도부 선생님과 눈이 마주쳐 교무실로 머뭇머뭇 끌려 들어가는 나와 너무나 닮은 그녀의 발걸음을......
수술시간인 Am 8:00가 다가왔다. 제왕절개를 하는 우리여서 수술은 금방 끝나니 걱정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수술이란 언제나 긴장되는 것 같았다.
분만실 밖 소파에 앉은 나를 포함한 남편들 3명은 누구 복이 먼저 달아나는지 시합이라도 하듯 ‘달달달’다리를 떨며 초조함에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애꿎은 스마트폰만 만지고 있었다.
“으아...! 으아...! 선생님 아파요!!......, 산모님! 후~하~후~하~를 반복해보세요!!”
분만실 안쪽은 그야말로 전쟁터 같았다. 자연분만 산모들의 산통이 커질수록, 밖에 앉아있는 남편들의 다리 떠는 속도 또한 날개를 달고 있었다.
바로 그때, ‘응애!! 응애!!’첫 번째로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졌다. 순간 남편들의 다리 떨림은 멈췄고, 마치 2002년 한일 월드컵 스페인과의 4강전 마지막 승부차기 키커인 홍명보의 슛을 숨죽여 지켜보던 붉은악마의 마음으로 모두 분만실 출입문만 쳐다보고 있었다.
"박00 산모님 보호자분!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간호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 분만실 안으로 들어갔다.
"산모는 괜찮은 거죠?”
(이 대사는 지금 생각해도 100점짜리 남편의 질문이였다고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다.)
"네,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해요, 아기는 공주님이고, 키랑 몸무게는 이렇고...”
간호사의 설명을 배경음악 삼아 드디어 곱게 쌓여 진 초록색 보자기를 여는 역사적인 순간...
‘사랑스런 나의 2세여... 우리 아가... 아... 아... 엥??? 뭐지... 이 쭈글쭈글한 인형은...?
... 그렇게 아빠와 찌바기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Episode 2. [잠 좀 자라... 잠 좀 자자...]
찌바기가 없던 과거의 내 인생은 목욕탕 사우나 속의 모래시계처럼 더디게 흘렀지만, 찌바기를 만난 후의 나의 모래시계는 그렇지 않아도 고운 입자의 모래를 누군가 계속 갈아 아래로 흘려보내는 것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언젠가 스마트폰으로‘육아 스트레스 중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부분은?’의 질문에 압도적 1위를 차지한‘아기 재우기’라는 설문조사를 본 적이 있다.
조리원에 있을 당시 아기 cctv를 수시로 봤는데 언제나 찌바기는 잠을 자고 있었기에‘하루종일 누워서 잠만 잘 자는데 왜 힘들다는 거지?’라고 자신있었는데...... 마치‘아빠는 속은거야!! 하하하!!’라고 비웃기라도 하듯 찌바기는 침대에 등만 닿았다 하면 눈을 뻔쩍! 뜨고 울어버렸다. 1시간여 동안 품 안에서 둥가둥가로 간신히 재워 아기방으로 입성! 방안은 오로지 아빠의 심장소리만이 쿵쾅대며 싸늘하였고, 그동안 갈고닦은 ‘옆으로 굴려 눕히기’기술을 발휘하여 아기침대에 눕히기 성공!! 속으로 만세 삼창을 외치며 돌아서는 순간......
‘끼이잉~... 으~우~웅~~... 오..에..오..아.. 꿈틀... 꿈틀... 으앙!!!’
영화‘부산행’마냥 그렇게 아기는 살아나고 있었다......
‘안돼...... 제발...... 눈 뜨지마... 널 어떻게 재웠는데...... 지금 깨서 다시 재우면 또 맘마시간이란 말이야 ㅠ.ㅠ’
‘하... 이 정도면 등에 가시가 박혀 있는게 분명해...’라고 생각할 정도로 등이 예민한 아이...... 그렇다. 우리 아이 역시 등센서가 예민한 아이였다.
덕분에 시험기간에도 새어보지 않은 밤을 아내와 매일 새어가며 우리의 전우애는 두터워졌고, 주름살 또한 나날이 두터워져만 갔다.
‘50일 통잠 비법... 50일 원더윅스... 기적의 통잠 베개... 50일 아기 어떻게 재우나요...’
오늘도 아빠는,‘맘카페’에 들어가 다른 맘들의 위로에 베개를 적시며 잠이 든다...
Episode 3. [아빠의 결심. 육아휴직 하다]
“너 어디 아파? 요즘 기운 없어 보인다? 애기 낳고 2살은 더 들어보인다?...”
출근과 함께 날아오는 반복되는 위로들... 그렇다... 나는 지금 몹시 피곤하다...
밤새 찌바기와 씨름을 하고 새벽에 출근을 하는 나의 모습은,‘아기공룡 둘리’에서 둘리 일당들에게 하루 종일 시달리는‘고길동’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어릴 때는 늘 무표정에, 예민하던 고길동이 그렇게 나빠보였는데, 이제는 그의 등을 토닥여 줄 수 있을 것만 같...... 아니지, 지금은 그가 나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 줘야될 만큼 나는 모든 것에 지쳐있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하면... 다시‘육아출근’을 위해‘집’이라는 직장에 출근을 하고... 2시간 신체알람이 설정되어 있는 아기의 잠을 재우고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흔드는 야근을 마치고...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이데 어느새 나는 다시 무표정의 고길동으로 출근길에 오르고 있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갈 때 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24시간 내내 집에 갇혀 의식의 흐름 없이 딸랑이를 흔들고 있을‘여자 고길동’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그렇다...... 내 아내도 폭삭 늙어있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어! 부모도 사람이다! 부모가 쌩쌩해야 질 높은 육아에 전념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난, 지금 아니면 이 시기에 볼 수 없을 아이의 예쁜 모습을 보기 위해, 예쁘고 멋있었던 두 명의‘고길동’을 지키기 위해, 6개월간의‘휴직서’를 제출 후 백수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이런 말들을 했다.‘애 보는게 일하는 것보다 힘든데 왜 사서 고생을 하니, 둘 다 휴직하면 돈은 누가 벌어, 아빠가 애기랑 좋은데 다니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도 정작 애기는 기억도 못해, 차라리 더 크고 나서 휴직하는게 나아...’물론 100%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휴직한 지 약 2달여가 지난 이 시점...... 솔직히 직장을 다니며 육아를 했을 때보다 몸이 건강해졌다거나, 삶이 편안해졌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여전히 아이는 등을 대고 자기를 싫어했고, 역류쿠션에 누워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 국민모빌을 멍하니 쳐다보며 1시간을 보내던 그때의‘아기’는 멀티탭과 신발장을 좋아하고, 리모컨과 충전기 선을 쫓아 하루종일 바삐 움직이는‘아기도마뱀’으로 레벨업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근해서 쓰기 위해 저장했던 나의 비상체력을, 아이의 최애인 이불놀이와 잡기놀이에 오롯이 쏟을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레 아내의 휴식시간이 늘어나고, 출근 중에는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었던 지금 이 시기 아이의 표정, 옹알이, 행동 하나하나 등을 볼 수 있어 오늘도 아빠의 추억 농사는 풍년이다.
Episode 4. [떠나요, 제주로]
이 글을 마치면, 우리 가족은 아내가 그토록 노래를 불러오던 ‘제주 한달살이’를 떠나게 된다. 초임지인 제주도에서 6년간 교직생활을 하다가, 오로지 남편만을 믿고 연고도 없는, 친구 한 명 없는 이곳까지 와서 고생만 하고 있는 아내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고, 상상력 가득한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만지며 새로운 것을 경험시켜 주며 가장 아름다운 계절과 날씨의 제주도를 보여주기 위해 어서 글을 마치고 캐리어를 챙길 시간이 되어간다.
네가 태어난 지 274일, 아빠의 육아휴직이 반환점을 도는 지금 이 시점... 찌는 태양 아래, 쿨시트와 차양막, 4단 선풍기로 풀세트 장착된 유모차에 앉아 행차하시는 상전을 모시며 오로지 나만 힘들었던 산책길에도 어느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듯......
너의 식탁 발받침은 두 계단이 내려갔고, 4단계 기저귀도 점차 래쉬가드 마냥 허벅지에 꽉 끼었고, 잇몸으로 녹여 먹느라 한 개를 쥐어주면 5분은 자유시간이 생겼던 떡뻥도, 이제는 게눈감추듯 사라지게 만드는 아랫니 2개도 생겼고, ‘육아는 장비빨’이라는 말처럼, 획기적인 육아템들이 집을 가득채우며 아빠의 통장 잔고는 줄어갔지만, 너의 웃음소리는 날로 커져만 가고, 네가 없던 시절의 하루가 이제는 생각이 나지 않는 아빠가 되버렸구나.
처음 눈을 뜨고, 눈을 맞추고, 쪽쪽이를 물고, 뒤집기와 되집기, 기어다니다가 혼자 앉고, 아빠의 옷깃을 움켜잡고, 아빠를 불러주고, 소리내어 웃어주고... 그 외의 셀 수도 없이 많았던 너의 처음을 볼 수 있어 감사했어.
매일을 찰떡같이 붙어있으며 우리가 함께 했던 지금 이 시간을,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빠는 영원히 기억할게. 훗날 사진을 보며 함께 추억하자.
아가야. 아빠 인생에 나타나줘서 고마워......